잠깐 서서 뒤돌아보기 측면돌파 내인생

파리 다녀 오는 비행기에서 “도리를 찾아서”를 봤다. 와이프가 나만 쏙 빼고 조카랑 극장에서 따로 보는 바람에 포기했던 영화였는데 내심 반가운 마음에 정주행했다. 기대보다 더 재미있었는지 한 시간 반 가량이 휙 지나고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랐다. 두 눈으로는 멍하니 자막을 훑었고 머릿속으로는 도리 친구로 나온 문어 '행크'를 떠올렸다. 주인공은 분명 도리였지만 왠지 나는 도리가 아니라 문어 행크가 자꾸 생각 났다.


우리 문어 친구는 도리 그 놈의 물고기 뒤치다꺼리 하느라 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. 행크는 도리의 터무니 없는 부탁(이라 쓰고 몰염치라 읽는)에도 불평 몇 마디 늘어놓을 뿐 죄다 해결해 주는 의리맨에다, 아크로바틱한 몸놀림으로 벽이면 벽, 화분이면 화분, 주변환경에 맞게 몸 색깔을 시시각각 바꿔 대는 능력자다. 스펙으로 따지자면 거의 어벤저스 뺨 때릴 급. 그런데 나는 행크의 활약을 보면서 왠지 짠했다. 행크에게 내 모습이 계속 오버랩돼서 말이다.


고백하자면 회사에서 나는행크와 별반 다르지 않다. 도리의 어이 없는 부탁에 버금가는 윗선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까라면 까 정신으로 일을 쳐낸다. 개인적 주관과는 일체 상관 없이 결정되고 처리되는 업무, 피드백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을 시시각각 재단하고 욱여 넣는 모습,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살아 남으려 발버둥치는 스크린 안의 행크와 판박이다. 지금이야 닳고 닳아 웬만한 상황에도 ‘에이씨’ 욕 한마디 속으로 삼키고 웃는 얼굴로 책상머리 앞에 앉아 있지만 사회 초년생 때만 해도 정말 큰 고민이었다.


참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견뎌냈나 싶은 사회 초년생 시절, 기형도, 박민규, 천명관, 장강명, 편혜영, 오쿠다 히데오, 다자이 오사무, 루쉰 등이 위로와 도움을 많이 줬다. 그 중에서도 회사 생활에 가장 꿀팁을 준 단 하나의 작품을 꼽자면 두말 없이 마키아벨리의 ‘군주론’이다. 내가 가진 책은 권혁 님이 번역한 2005년 초판, 돋을새김에서 나온 책이다. 페이지마다 밑줄도 많이 치고 메모도 수없이 해서 몇 년 지나지 않은 책인데 헤지기도 많이 헤졌다. 개인적으로 마음을 울린 글귀가 무척 많았던 책, 이번에 행크 덕분에 다시 한 번 펼쳐보니 사회초년생 시절의 나는 아래 구절이 굉장히 와닿았나 보다. 색색별 줄에 별표까지 붙었다.


“무력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자 사이에는 어떤 공평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"


문득 그 당시 회사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떠오른다. 날밤 까고 고민해서 들고 간 아이디어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던 그 시절. 물론 신입사원의 미숙함 때문이었겠지만, 당시에 버려지는 아이디어를보며 느낀 감정은 부당함 단 하나였다. 아무리 봐도 내 생각이 더 좋은데 왜 윗사람들 아이디어만 좋다고 난리들인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. 그러다 마키아벨리를 읽었고 위의 한 문장이 신입시절 내 마음가짐 바꿨다. 정말 그랬다. 회사는 짬이 무기였고 죽창하나 없던 나는 정면 승부를 피하고 측면돌파를 선택했고 나만의 무기를 남몰래 갈고 닦았다. 막막했던 신입시절을 마키아벨리의 충고로 견뎠다.


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났고 어느덧 짬이 차고 무기가 갖춰진 요즘 군주론은 또 다르게 읽힌다.

(군주는) 사랑 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.

인간은 사랑하는 자를 해칠 때보다 두려워하는 자를 해칠 때 더 주저합니다.

자비로 인한 혼란보다 잔혹함으로인한 질서가 낫습니다.

군주라면 사악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,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.


회사도 마찬가지다. 두려움이란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. , 권위와 명분 없는 두려움은 증오를 불러오기 때문에 그 밑바탕에는 명분과 합리가 꼭 수반되어야 한다. 요즘 부쩍 피부로 느끼는 점인데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새겨들을 말이다. 마냥 사람 좋은 리더가 되려고 팀원에게 책임이 결여된 자유와 충고가 거세된 배려를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. 그리스 도상학에서 디케(정의)가 종종 네메시스(복수)의 모습으로 읽히는 것처럼 팀원의 입장에서는 팀장이 선의로 부여한 자유가 우유부단으로, 배려가 책임회피로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.


같은 책을 놓고도 몇 년 전의 나와 요즘의 나는 전혀 다른 각도로 책을 이해하지만, 그럼에도 하나 변하지 않은 건 그때도 지금도 군주론은 어느 페이지를 펼치건 어떤 문장을 읽건 남다른 영감을 준다는 사실이다. 오늘 다시 읽어본 군주론은 결국 '관계'에 대한 통찰이었다.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었고. 지금의 나는 행크지만 몇 년 뒤에는 무엇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. 물론 바라는 모습은 있다. 몇 년 뒤에 오늘을 추억하며 또 군주론을 읽어볼까 한다. 








덧글

  • 함부르거 2016/12/26 16:53 # 답글

    군주론에는 변치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통찰이 들어 있죠. 오늘날에도 계속 읽히는 이유가 그것이구요.저도 다시 꺼내 들어야겠습니다. ^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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